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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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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아나가키 히데히로/조홍민 옮김. 글항아리

 

 

 

에도는 지금의 도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은 1603년부터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일본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었다. 이에야스 자신이 무장이었고 대를 이어 무신들이 통치했다. 말하자면 에도는 칼을 찬 무사들이 득실대는 도시였던 셈이다. 그런 곳에 식물과 칼의 동거라니. 마치 물과 기름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그러니 책의 소개 글이 ‘폭력’과 ‘미학’이 기묘하게 뒤섞인 근대 초기 에도로 떠나는 여행일 터. 

 

일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벚꽃이니 우선 그것부터 살펴보자. 일본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다른 꽃을 제쳐두고 벚꽃을 사랑하는 것일까? ‘꽃은 벚나무, 사람은 무사’라는 말이 있단다. 꽃은 폭풍처럼 흩날리는 벚꽃이 가장 아름답고, 사람도 그와 같이 생을 마감해야 훌륭한 무사라는 의미다. 주군을 따라 자결하는 사무라이의 의리를 벚꽃에 비유한 뜻은 알겠지만 그건 극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혐의가 농후해 보인다. 봄날 눈부시게 피었다가 일순간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장엄한 벚꽃의 낙화 앞에서 누군들 감정에 진동이 없겠는가? 

 

여름 별미인 소바가 어떻게 해서 인기를 끌었는지,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과 군대의 관계를 살핀다. 당시의 무장들이 식물에 관심을 쏟은 것은 실리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총에 필요한 화약을 쑥에서 얻었을 뿐만 아니라 식물을 전쟁이나 성을 쌓는 데 이용했고, 농업과 자신의 영지를 경영하는 데도 활용했다. 무사들에게 식물은 무기이자 전략물자였던 셈이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전용 약초원을 가꿀 정도로 ‘실물 마니아’였다고 한다. 스스로 달인 약초를 먹으며 건강을 다진 이에야스는 경쟁자들을 물리쳤고, 식물자원을 활용할 도시 에도를 설계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를 따르던 사무라이들의 소울푸드가 미소 즉 된장이었고 된장은 일본 전국시대 전쟁터에서 전투 식량으로서의 막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들의 심볼인 문장 역시 대부분 식물의 꽃잎이나 이파리에서 따와 디자인했을 만큼 친숙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인간이 식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때론 궁금하다. 일본인의 식물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유별나지만 어느 나라든 도시의 탄생에는 식물이 기반이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의식주만 봐도 그렇다. 식물을 사랑한 도시가 에도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성스레 정원의 나무를 가꾸고 장바구니에 꽃을 빠뜨리지 않는 일본인의 생활습관은 이런 긴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을 아닐까. 물론 그들만이 아니라 인간 생존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식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클럽케이서울 신상웅 북 큐레이터]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2016년 서울과 청주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동아시아의 쪽 염색을 찾아다닌 책 [쪽빛으로 난 길]을 냈다.

염색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