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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이십 대에 오십 먹은 사람처럼 시를 쓰던 시인이 있었다. 그의 시에 대해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어떤 사람인가 입소문이 무성해질 때 쯤 아직 이십 대의 시인은 바다 바깥으로 떠났다. 고고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갔다고 했다. 시와 고고학이라니. 훗날 그가 바다를 건너 나가고 싶어 했던 것도 일종의 생존과 관련된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시간이 꽤 지나 고백했다. 그곳에서 낡은 기숙사에 방 한 칸을 얻어 동전을 넣고 세제를 넣고 빨래를 했다. 그 당시의 그는, 자신이 시를 쓴 적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애를 썼다고 했다. 격렬한 감정이나 날 선 감각이나, 하는 것들이 그는 어느 사이에 무서워졌다고도 했다. 그는 고고학 중에서도 동방고고학을 공부한다고 나중에 들었다.

 

전쟁 중인 오리엔트의 땅으로 가 마른 흙을 붓으로 걷어내고 유물이 있던 자리를 모눈종이에 빠짐없이 그리는 일. 수천 년 전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를 더듬어 그곳에 살았던 인간과 그들이 숭배하던 신들과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에서 그들의 일상과 죽음과 전쟁을 읽어내는 일. 그러나 아무리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발견되지 않는 과거는 고고학적인 사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발견된 사실에서 설명되지 않는 고대의 현상을 우리가 살아가는 생각의 습관으로 해석하는 것도 공허한 일에 불과했다. 발굴의 현장에서 시인은 몇 백 리 바깥에서 저 무거운 바위를 이곳까지 가져온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 그는 객관적 사실의 고고학의 현장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 까.

 

이국에서 사는 삶이 누추하고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말의 일상이 견딜 수 없어질 때, 그는 그의 무모한 고고학 공부가 다시 시를, 문학을 위한 것임을 나중에 깨달았다. 그의 삶의 중심에는 늘 글이 있었던 것. 그는 고고학과 문학 사이를 오갔다. 먼지가 날리는 야외 숙소에서 시를 썼고 다시 오래 된 기록 속의 발굴지를 찾아 떠났다. 발굴지의 현장을 글로 썼고 여전히 수천 년 전의 땅 속에서 살아남은 토기며 굳은 흙 판 위에 남은 수천 년전의 그들의 흔적을 기록했다. 어쩌면 인간이란 고작 자신이 살아가는 생애만이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지나간 시간을 해독하는 것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 앞에서도 속수무책인 것이 인간이기도 했던 것.

 

이제 오십 대의 그는 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그 세월만큼의 길이나 무게나 부피로 사유한다고. 만일 나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것들이 200년 정도 내 수명을 늘인다면, 어떤 생각을 하면서 나는 생의 순간순간을 넘어갈까 하고. 그는 바다 바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말이다.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클럽케이서울 신상웅 북 큐레이터]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2016년 서울과 청주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동아시아의 쪽 염색을 찾아다닌 책 [쪽빛으로 난 길]을 냈다. 염색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