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자기 여행-규슈의 7대 조선 가마
자신이 원하는 때 어디로든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다. 그것도 특별한 경우에 속해서 생에 한번 뿐인 기회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만 돌아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맘껏 구경도 못하고 짧은 시간 동안 서둘러 보고나면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패키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외국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좀 긴 연휴다 싶으면 너나할 것 없이 비행기를 예약하고 소풍 가듯 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 이제는 예전처럼 판에 박힌 스케줄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적인 일정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소화하고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간과 형편이 나은 부류들은 세계 유수의 미술비엔날레나 영화제를 보고 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오지의 축제 기간에 맞춰 여행 일정을 짜기도 한다. 한 술 더떠 아예 각 나라의 숨은 음식을 찾아나서는, 말 그대로 ‘식도락 여행’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요즘이다.
임진왜란을 말할 때 보통은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지만 그 길었던 전쟁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른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왜군은 돌아가면서 조선의 수많은 도공들을 잡아갔다. 얼마나 되는 지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수의 도공들이 배에 실려 끌려갔다고 전한다. 당시 고온에서 구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중국과 조선 밖에 없었고 일본은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 사람을 중국이나 조선에 보내 배워오면 되겠지만 그보다 확실한 것은 능력을 지닌 사람을 데려오거나 납치하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 그릇을 구워야했던 조선의 도공들의 후손은 일본에서 처음 백자를 만들어 도자기의 신으로 불리는 이삼평과 여전히 조선의 이름을 고집하며 15대를 이어 내려온 심수관이라는 인물들로 살아남았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의 도자기는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도자기 강국이 되었다.
남의 나라 사람을 잡아다가 자신들의 도자기를 만든 교활하고 파렴치한 나라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비나 다름없었던 도공들에게 집과 땅을 주며 고급기술자로 대접해 결국에는 세계 도자기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던 저들을 비난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건 단순히 도공이나 도자기의 문제만은 아닌 탓이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바라보던 두 나라의 자세는 그렇게 달랐다. 남에 의해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이 터를 잡은 곳이 일본 규슈 지역이다. 시작은 비극이었지만 문화는 그렇게 전파되기도 한다. 문화는 안목을 가지고 애용하는 자가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규슈의 도자기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클럽케이서울 신상웅 북 큐레이터]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2016년 서울과 청주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동아시아의 쪽 염색을 찾아다닌 책 [쪽빛으로 난 길]을 냈다.
염색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