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소록(養花小錄)
오래된 것은 낡고 쓸모없는 것일까? 그것이 물건이든 생각이든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질문이기도 하다. 누구는 더 이상 필요 없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보물일 수도 있겠다. 이렇듯 하나의 물건이나 생각에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양화소록>은 그냥 낡은 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종대왕 무렵인, 무려 600년도 더 된, 그것도 사대부가 지은 꽃과 나무에 대한 원예서라니. 일단 책 안으로 들어가 보자. <양화소록>은 ‘꽃을 기르는 일을 적은 간략한 책’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기술만 나열하지 않는다. 물론 내용에는 꽃과 함께 나무도 포함된다. 소나무는 반드시 입춘과 춘분 사이에 옮겨 심어야 죽지 않는다는 것도, 매년 음력 5월 13일 대나무가 술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해질 때가 옮겨심기 적당한 시기라는 것도, 연꽃을 심을 때에는 붉은 꽃과 흰꽃을 나란히 심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어디 그뿐인가. 흔히 노랗거나 흰색으로 알고 있는 국화꽃도 검은색으로 바꿀 수 있는 비밀이 있다는 정보도 여기서 얻었다. 그동안 무심했을 뿐 꽃이든 나무든 하나의 세계라 부를 만했다. 뜻밖의 재미난 얘기로 관심을 끄는 나무는 드물게 여름에 꽃을 피우는, 초본류의 백일홍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목백일홍이라 부르는 배롱나무에 관한 대목이다.
배롱나무는 파양화라고도 하는데, 파양은 간지러움을 겁낸다는 뜻이다. 배롱나무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는 까닭에 나뭇가지 사이를 손가락으로 긁으면 가지와 잎이 다 움직인다고 하였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노을이 타는 것처럼 찬란하다. 한여름 그 아래 자리를 깔고 누우면 사나운 뙤약볕도 쳐들어오지 못한다. 맑은 바람 소리가 퍼져나가고 시원한 기운이 절로 찾아와 영혼을 씻어내는 어름 항아리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책은 씨를 뿌리거나 옮겨 심거나, 혹은 영양분은 무엇이 좋은지 또 겨울이 오면 기르던 꽃과 나무는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눈앞의 꽃과 나무가 관상용만은 아니었던 것. 저자도 수백 년 동안 누적된 누군가의 경험을 모아 이 책을 썼듯 책 속에서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이 매일 만나던, 마당의 소나무든 아니면 책상 위의 노란 국화든 마음으로 애지중지한 꽃과 나무들은 마치 ‘반려식물’을 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낡은 것은 어쩌면 600여 년의 시간이 아니라 꽃과 나무를 대하는 우리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이 봄, 댕댕이와 냥이도 좋지만 마당이나 화분에 나무나 꽃 한 그루 심는 것은 어떨까? ‘반려식물’로 말이다.’
[클럽케이서울 신상웅 북 큐레이터]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2016년 서울과 청주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동아시아의 쪽 염색을 찾아다닌 책 [쪽빛으로 난 길]을 냈다.
염색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